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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

by 쏘쏘라이프 2025. 5. 27.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형이상학적 회화(pittura metafisica)’라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한 인물입니다. 그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선구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미술사에서 상징과 철학을 결합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데 키리코는 시계가 없는 도시, 정체불명의 조각상, 길고 왜곡된 그림자, 텅 빈 광장 등 일상과 비일상이 혼재된 시공간을 그려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 너머의 세계를 응시하게 만듭니다.

1. 조르조 데 키리코의 생애

조르조 데 키리코는 1888년 그리스의 볼로스(Volos)에서 이탈리아인 부모 아래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철도 기술자로서 엔지니어링에 종사했고, 어머니는 독일계로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녔습니다. 어린 시절 데 키리코는 고전 신화와 철학, 특히 독일 철학자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심취했습니다. 이는 그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전적 기둥, 아르카디아적 풍경, 심오한 정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아테네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독일 뮌헨으로 건너가 아카데미에서 정식 회화 교육을 받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아르놀트 뵈클린과 막스 클링거의 상징주의적 그림과 니체의 철학을 깊이 있게 접하게 됩니다. 특히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와 “아폴론적 세계관”은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예술 세계의 핵심 기초가 됩니다.

 그의 예술 세계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파리에서입니다. 파리로 이주한 그는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하게 되고, 특히 기욤 아폴리네르,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등과 친분을 맺습니다. 이들과의 교류는 데 키리코의 작업을 보다 넓은 무대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감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데 키리코 본인은 일찍이 초현실주의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후기에는 오히려 전통적인 고전주의 회화로 회귀했다는 점입니다.

 

2. 조르조 데 키리코의 예술의 특징과 대표작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예언자의 거리(The Enigma of the Oracle, 1910)」는 그가 형이상학적 회화의 방향을 정립하기 시작한 시기의 작품입니다. 탁 트인 광장, 정지된 인물, 기묘하게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정적은 현실 속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작품에서 데 키리코는 공간과 시간의 뒤틀림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과 존재의 불확실성에 대한 탐구를 시작합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시간의 수수께끼(The Mystery and Melancholy of a Street, 1914)」는 빈 도시의 거리, 아이의 그림자, 그리고 한켠에 놓인 수레가 등장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이 풍경은 어디선가 불안감과 정적,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데 키리코는 이렇듯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정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관객 스스로 의미를 사유하게 합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사물의 시(Piazza d'Italia)」 연작에서는 고전 조각상, 무인 도시, 정지된 시계 같은 오브제를 통해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을 구축합니다. 이는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며,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흐립니다. 데 키리코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분위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과 소외를 상징적으로 그려냅니다.

 

데 키리코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의미의 부재’ 혹은 ‘의미의 불확실성’을 가시화하는 능력입니다. 그는 그림을 통해 설명 가능한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 질문을 남기고, 시청자의 상상과 감정에 여운을 남기는 방식을 택합니다. 일종의 ‘시각적 철학’을 구사한 셈입니다. 작품 속 오브제는 실재하는 사물이지만, 그것들의 조합과 배치가 생경하고 기묘하기에 전혀 다른 차원의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1920년대 이후 데 키리코는 점점 고전주의 회화로 회귀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구도와 인물을 그리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는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흐름에서 스스로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은 초현실주의는 물론, 뒤샹, 달리, 마그리트, 마티스 등 수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후대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에도 간접적인 자극을 제공하였습니다.

 

조르조 데 키리코는 1978년 로마에서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긴 생애 동안 그는 끝없이 예술의 본질을 사유하고 실험했던 작가로,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철학적 사유와 시각적 신비함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그는 단지 화가가 아니라 철학자였습니다. 물감과 캔버스를 통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졌고, 시각적 언어로 철학적 사색을 구현했습니다. 조르조 데 키리코는 현실의 이면을 응시한 예언자였으며, 그의 형이상학적 예술은 우리에게 지금도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